우명 선생의 마음 실체에 대한 짧막한 단상

<꿈>

우리는 꿈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쓰는 것 같다.

어제 밤 꾼 꿈이….라며 꿈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내 꿈은 대통령이 되는거야, 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다.

 

공통점이 있다면, 꿈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거나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꿈,

우명 선생이 이야기한 꿈이라는 시를 살펴보자.

마음수련 우명선생 – 꿈과 인생

“꿈 깨니 나는 그냥 있었어요”

꿈이란 허무하고 연기같이 잡히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이 문장은 참으로 신선하고 독특하다. 꿈과 내 마음의 실체를 들킨 것 같으면서도 심오하다.

꿈을 깨면 나는 그대로 있다.

꿈은 잔상만 남을 뿐 실제 세상에는 없지만, 꿈 깬 나는 그대로 있다.

 

우리는 어쩌면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없는 것’을 쫓아 다니느라 바쁜지도 모르겠다.

 

 

<믿음>

마음수련 우명선생 글– 믿음의 실체는 행동

이라는 이 시에서는 믿음이란 행동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믿는다, 종교를 믿는다, 사상을 믿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믿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는 것. 너무나 당연한 진리인데도 이렇게 들으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는 세상에 별로 없는 듯하다.

지나간 형제를 믿기만 할 게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가진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

우리 마음 실체-마음수련 우명선생 글귀

나보다는 우리가 좋고, 우리여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요즘 따라 더 체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점점 자기만의 시간이 많아지고 1인 형제 가구도 많아지다 보니 각자 자기 하고 싶은 것만, 자기 일만 하고 사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요즘은 중, 고등학생들이 제일 가기 싫은 것 중에 하나가 ‘수학여행’ 이라는 설문조사도 본 적이 있다. 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그런 단체 생활을 강요하냐는건데… 예전이랑은 사뭇 다른 분위기에 조금 놀란 적이 있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고 조금 낯선 환경에서 잠들어도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던 수학여행이었는데.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공중전화에 줄 서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때가 더 그립기도 하다. 나보다는 우리를 더 생각하던 시기가 아니었을 까.

 

“이 땅의 원래 사상 우리이어라”

“우리가 남인가”

진짜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가짐 없는 삶이 진짜 삶의 실체다, 우명 선생의 또 하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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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람에 대한 마음 때문에 힘이 들던 내가 우연히 펼친 페이지를 보다가 꽂힌 페이지가 있었다. 우명 선생의 시집 중 ‘가짐’ 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가 가짐과 집착이 많았는지,
이 단어가 내 마음 속에 훅 다가왔다.

나는 사람도 가지고 싶고,
돈도 가지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 천지다.
인기도 가지고 싶고
사랑도 가지고 싶고
그냥 곰곰히 내 마음의 실체를 돌아보니
‘가짐’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마음수련 우명선생 – 가짐이 없는 마음
그런데 가짐이 없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하는 우명 선생의 시를 보니,
이 상태가 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라는 막연한 부러움이 들었다.
마치 우명 선생은 ‘가지지 않음’ 의 실체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짐이 없음의 상태를 너무나 자세히 이야기하고 해주고 있다.

가짐이 없으면 불편이 없고
하나가 되고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안가짐의 실체
마음이 없고
번뇌가 없고
괴로움이 없고

마음수련 우명선생 – 진짜 행복의 실체
화기애애하고
삶에 의욕이 있고
잘 살 수 있고
모든 걸 채울 수 있다.

가짐이 없으면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우명 선생의 말이
너무나도 와닿는 요즘이다.

reason of unhappiness-woomyung poem
불행이 계속 되는 것은
나의 가지려는 마음 때문이다.
가지면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가져도 행복하지 않음은, 조금만 살다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마음수련 우명선생 – 집착 없는 마음이 없으면
가짐이 없으면 자존심이 없어서
싸움하는 일이 없고
그지 없이 편안하게 된다는 말.

이렇게 가짐이 없으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느껴지니
이 글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내가 가지려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하나씩 놓는 마음 수련 연습을 해봐야 하나보다.

바르게 사는 삶이란 이치와 실체를 아는 삶이다- 우명 선생의 책을 보며 마음수련

바른 청년이 유행이다.
유재석이나 박보검 같은 ‘착하고 바른’ 사람은 언제 굴곡 없이 인기를 얻는다. 안티는 커녕 사람들이 응원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정말 ‘바른 사람’ 에 대해 선망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수련 우명선생 – 바른 마음의 실체
그럼 정말 바르게 사는 삶의 실체란 무엇일까?
우명 선생의 시 구절에 ‘바른 삶’이라는 이야기가 눈에 띄어서 읽어보았다.

“배움보다 안 배움을 먼저 배워라.”
“안 배움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다소 낯선 말이지만, 이내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항상 그렇듯이 우명 선생의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안 배움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건 어찌보면 말이 안되는 이야기같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
겸허하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일줄 알고
‘나는 모르는 사람’ 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더 성장하는 걸 많이 본다.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수련 우명선생의 말의 실체는 그런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안 배움이란, 텅 빈 도화지 같은 상태여서 모든지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닐는지 짐작해본다.

편안한 삶을 사는 이치

더 나아가 ‘안 삶’을 먼저 배우라고 이야기한다.
아직은 어렵지만 마음 수련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치를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삶은 어쩌면, ‘가짐’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돈을 가지고, 집을 가지고, 직장을 가지고
잃지 않으려고 바둥바둥 산다.

“안 가짐은 사람을 해방하게 하는 것이니
안 가지면 그지없이 편안한 마음이어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한번도 ‘안가짐’을 경험했던 상태가 없는 것 같았다.
안 가짐은 어떤 상태일까?

마음수련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떠남

우명 선생이 말하는 만남보다 떠남을 먼저 배우라는 말은 참으로 공감이 간다.
인생의 실체를 이야기해주는 거 같은.
이 말은 전혀 슬픈 말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스킬일 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을 잃고 싶지 않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나는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나의 이런 불안함을 다 알아채기에
우리는 서로 편한 사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서 자유로워지려면
그 사람이 내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음을 빨리 익히고 배울 수만 있다면
그 누굴 만나든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떠남을 배우는 것도
언젠가는 죽음이 있음을 알고,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떠날 수 있다면
좀 더 삶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수 있지 않을까.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마음 없음-마음수련

마음 없음. 없음을 배우고 사람을 대하면
상대가 그지없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편안해지며 마음수련이 된다.
우명선생이 말하는 그 경지
언젠간 그 실체를 경험할 수 있을까?
언젠간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괴로운 마음의 실체, 마음수련 우명 선생 저서에서 발췌

사람들이 마음수련을 찾고 또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그 원인의 실체는 무엇일까 살펴보면
‘인생의 괴로움’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괴로움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D%86%B5_(%EA%B0%90%EC%A0%95) )

 

마음수련 우명선생 – 괴로움의 실체

그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걸까.
마침 읽던 책에 괴로움에 대한 시가 있어서 발췌해보았다.
‘사람의 괴로움
사람의 가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자기가 없으면 일체가 없는 것이라’

언제나 그렇듯, 우명선생은 항상 마음수련의 실체를
간결하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이해하기도 어렵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서 생긴 자기의 표현이라’

이 말은 꽤 생각 해볼만하다.
괴로움은 누가 만들어서 나에게 준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만들고 짐지고 있는 것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색다른 관점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괴로움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목표로하는 상태에 도달하지 못해서 좌절하기도 하며
소중했던 사람이 떠나면 슬프고 괴롭고
혹은 감당하지 못할 미움에 스스로 괴롭기도 하다.
다양한 이유로 괴로운 마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흔히들 바깥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찾는다.
‘그 사람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만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괴로운 마음의 실체는 ‘내가 만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도 우명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실체

인생은
가질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허라고, 단순화하였다.
어쩌면 이 괴로움이라는 것도 내가 가지고 있어서 있는거라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괴로움도 없는 것 아닐까.
괴로움을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내 마음수련의 화두이자 숙제이다.

참인생을 노래하는 우명선생의 시

‘자기의 삶을 벗고 참의 자기 찾아라, 그래야 참 인생이지’
마음수련으로 참 인생을 살고 싶다. 그땐 우명선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괴로움도 인생의 희로애락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해탈의 경지가 될 수 있을까?

도인의 실체 우명 선생의 저서로 마음 수련

도인(道人).

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는 참 이상한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어디 산 속에서 한복 도포 휘날리며 수염을 허옇게 기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가르키기도 하고, 친구들 중에 감정기복도 없고 화도 잘 안내는 친구를 보면 ‘도인’같은 친구라고도 이야기한다.

 

도인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마음수련 우명 선생 저서에 도인의 실체가 나와 있는 글도 생각이 났다.

 

그 글을 이야기하며 도인이라는 단어를 말하기 이전에 ‘도道’ 라는 단어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길을 뜻하는 도는 노자, 장자를 대표로 하는 우주와 인생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도가사상에서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노자는 만물의 근원을 무(無)라고 했고, 무는 자연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또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했고 장자는 자유의 경지인 물아일체를 주장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A%B0%80)

 

이렇듯 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고 인생을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사상이다. 도인이란, 그러한 인생에 대한 깊은 탐구와 깨달음을 이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마음수련 우명선생-도인의 실체

 

우명 선생의 저서를 발췌해 본다. 항상 그렇듯이, 우명 선생은 인생과 삶, 우주에 대해 직관적이면서도 정확한 통찰을 보여주기에 ‘도인’에 대한 설명도 내심 기대를 하며 풀이를 하였다.

‘내 속에 내가 없는 것이 도인이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예전 유행가도 있듯이 우리 모두 내 속에 수많은 나를 담고 살아간다. 그런데 도인은 그런 내가 내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도인이라고 한다. 그러한 경지에 닿은 사람이 있기는 있는 걸까? 우명 선생은 그 경지에 닿아 있는 것일지? 도인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면서도 아리송해지는 그런 글귀가 아닌가 싶다.

 

 

도인의실체는 그냥 사람 속에 사는 사람

 

‘도인은 사람 속에 그냥 살구나’

도인은 산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그냥 산다고 한다. 도인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도인이 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선 사실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런데 저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삶과 인생, 마음에 대한 실체를 깨달은 도인이라면 분명히 산속에만 틀어박혀있지 않을 것이 아닌가. 사람 속에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사람 눈에 도인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이 말에도 많은 공감이 갔다. 도인은 사람 속에 있을 것이 분명하나, 사람 속에 있어도 사람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나는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도인이 상상이 가는가. 아무리 도인이라 옆에서 말을 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닐까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도인 실체를 알려주는 마음수련 우명선생

‘도인의 바깥 행 속에는 도가 없는 법이라’

이건 또 무슨 뜻일까 한참 아리송하긴 했다.

아직 마음 수련이 부족하여 말 뜻의 행간을 읽기에 부족한듯 하다.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도인이 사는 삶은 사람과 같다고 말하는 우명선생

사람의 겉모습에는 도가 없고 보이지 않는 마음에 도가 있다는 말은, 역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참 많이 묶여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도인 속에 진리가 있고, 도인은 사는 삶이 사람과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인정하려고 할까?

우명선생 책에서

 

모든 것을 떠났고

일체 가짐이 없으나

그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 속에 있지 않는 것.

 

우명 선생의 이 몇 문장으로만 어림 짐작해볼 수 있는 도인의 모습. 참으로 궁금해지고 의문이 생기는 한마디였으나, 모두가 납득이 되고 참으로 맞는 말인 듯 하다. 그리하여 한 문장 다시 곱씹으며 마음 수련을 해본다..

 

우명 선생이 말하는 마음의 실체에 대하여

 

 

마음수련 우명 선생이 이야기하는 ‘본래’의 실체란 과연 뭘까

여행중 마음수련 우명 선생 책을 읽다

3일 휴가를 내고 차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우리나라도 멋진 곳이 있구나 새삼 발견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춥긴 했지만 겨울 바람이 차갑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와서 마음수련 우명 선생의 책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를 읽는데 여행 하는 내내 생각했던 제 마음과 비슷하여 와닿는 구절이 있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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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 속에 가진대로 사는 것이라.” – 우명.

내가 상쾌한 마음을 가지면 온 세상에 상쾌해보이고, 짜증나는 마음을 가지면 저 좋은 풍경도 짜증나게 바라보았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내내 든 생각은 ‘왜 진작 휴가를 내고 올 생각을 못했을까’ 였습니다. 끝내 내린 결론은 ‘그 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였지요. 한동안 저의 세상은 ‘바쁨’의 세상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바쁘다’라는 마음 뿐이었죠. 시간이 없다, 영화 볼 시간도 없고, 누굴 만날 시간도 없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일 할 시간이 없다며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바쁨’ 속에 갇혀서 어쩌면 저는 ‘바쁜 것’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이 세상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라는 걸 여행 내내 느꼈습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실체도 내 마음이 펼쳐지는 영화 같은 것이겠죠.

본래로-돌아가라-이야기하는-우명 선생-책발췌

“부질없는 수많은 번뇌의 이것저것은 모두가 뜻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는 것은 본래로 가야 알 수가 있는 것이라”

모든 것이 내 마음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실체는 도대체 뭘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던 찰나에, 위 소절은 어느 부분 그 질문에 답을 해줍니다.

본래로 돌아가면 수많은 사연인 마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모두가 뜻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경지가 되는 걸까요?

본래 마음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우명 선생의 저서에 보면 이야기하는 맑은 마음, 실체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오늘도 귀중한 깨달음을 얻으며 하루가 지나가네요.

언젠가 본래 마음을 탐구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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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선생의 마음실체

우명선생 본래 마음실체

고운 마음을 위해 마음 수련,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고운 마음

“색시 참 마음이 곱네.”
“그 사람은 마음이 참 고와.”
라는 말들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곱다는 표현도 참 이쁜 표현이네요. 하지만 전 정작 고운 마음이 뭘까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우명 선생의 책을 보다 보니 제목이 ‘고운 마음’이라는 시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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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살아서 하늘 사람 되는 방법 _ 우명>

그 중에서 몇 구절을 들고 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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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와야지 마음이 혼탁하면 고운 것이 아닌 거친 것이지”
고운 마음의 반대는 거친 마음.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칠다는 것은 모가 많이 나있고 둥글지 못하고 다른 것과 잘 부딪힌다는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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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탁하면 고운 것이 아닌 거친 것이지. 이것저것이 뒤섞인 것이지.”
“거친 것이란 부딪힘이 많은 것이지.”
거친 마음에 대한 설명이 다시 나오네요. 고운 마음의 반대는 거친 마음인데, 그 거친 마음은 마음이 혼탁하고 이것저것이 뒤섞인 마음이라고 우명 선생은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것은 부딪힘이 많은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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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자는 불행뿐이지. 마음이 혼탁한 자는 좋고 나쁘고의 기복이 많지만 마음이 고운 자는 기복이 없지.”
거친 자는 불행뿐이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말입니다. 내 마음에 부딪힘이 많은 사람은 어떤 회사를, 어떤 학교를 가도 만나는 사람마다 부딪히고 힘들어하고 불행해합니다. 온통 사람들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똑같은 환경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죠. 외부 환경 탓이 아니라 진짜는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불행이든 행복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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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자 바다같이 그 마음이 넓은 자이고 고운 자는 일체를 수용하는 자라.”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이라.. 다시 한번 내 마음 씀씀이에 대해 생각게 합니다. 나는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수 할 때 받아놓는 세숫대야의 물만큼도 넓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제 마음의 실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가 진흙탕을 튀겨도 그것조차 다 수용할 정도의 마음인가. 반성하고 또 되돌아보게 되네요. 진정 고운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숫대야만도 못한 내 마음의 크기를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음 수련을 하게 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우명 선생의 책은 항상 느끼지만 여러 번 읽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깊이가 새롭고 또 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XAysHVA5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