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의 실체 우명 선생의 저서로 마음 수련

도인(道人).

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는 참 이상한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어디 산 속에서 한복 도포 휘날리며 수염을 허옇게 기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가르키기도 하고, 친구들 중에 감정기복도 없고 화도 잘 안내는 친구를 보면 ‘도인’같은 친구라고도 이야기한다.

 

도인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마음수련 우명 선생 저서에 도인의 실체가 나와 있는 글도 생각이 났다.

 

그 글을 이야기하며 도인이라는 단어를 말하기 이전에 ‘도道’ 라는 단어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길을 뜻하는 도는 노자, 장자를 대표로 하는 우주와 인생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도가사상에서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노자는 만물의 근원을 무(無)라고 했고, 무는 자연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또 도(道),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했고 장자는 자유의 경지인 물아일체를 주장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A%B0%80)

 

이렇듯 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고 인생을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사상이다. 도인이란, 그러한 인생에 대한 깊은 탐구와 깨달음을 이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마음수련 우명선생-도인의 실체

 

우명 선생의 저서를 발췌해 본다. 항상 그렇듯이, 우명 선생은 인생과 삶, 우주에 대해 직관적이면서도 정확한 통찰을 보여주기에 ‘도인’에 대한 설명도 내심 기대를 하며 풀이를 하였다.

‘내 속에 내가 없는 것이 도인이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예전 유행가도 있듯이 우리 모두 내 속에 수많은 나를 담고 살아간다. 그런데 도인은 그런 내가 내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도인이라고 한다. 그러한 경지에 닿은 사람이 있기는 있는 걸까? 우명 선생은 그 경지에 닿아 있는 것일지? 도인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면서도 아리송해지는 그런 글귀가 아닌가 싶다.

 

 

도인의실체는 그냥 사람 속에 사는 사람

 

‘도인은 사람 속에 그냥 살구나’

도인은 산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그냥 산다고 한다. 도인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도인이 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선 사실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런데 저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삶과 인생, 마음에 대한 실체를 깨달은 도인이라면 분명히 산속에만 틀어박혀있지 않을 것이 아닌가. 사람 속에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사람 눈에 도인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이 말에도 많은 공감이 갔다. 도인은 사람 속에 있을 것이 분명하나, 사람 속에 있어도 사람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나는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도인이 상상이 가는가. 아무리 도인이라 옆에서 말을 해줘도 믿지 않을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닐까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도인 실체를 알려주는 마음수련 우명선생

‘도인의 바깥 행 속에는 도가 없는 법이라’

이건 또 무슨 뜻일까 한참 아리송하긴 했다.

아직 마음 수련이 부족하여 말 뜻의 행간을 읽기에 부족한듯 하다.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도인이 사는 삶은 사람과 같다고 말하는 우명선생

사람의 겉모습에는 도가 없고 보이지 않는 마음에 도가 있다는 말은, 역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참 많이 묶여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다.

도인 속에 진리가 있고, 도인은 사는 삶이 사람과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인정하려고 할까?

우명선생 책에서

 

모든 것을 떠났고

일체 가짐이 없으나

그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 속에 있지 않는 것.

 

우명 선생의 이 몇 문장으로만 어림 짐작해볼 수 있는 도인의 모습. 참으로 궁금해지고 의문이 생기는 한마디였으나, 모두가 납득이 되고 참으로 맞는 말인 듯 하다. 그리하여 한 문장 다시 곱씹으며 마음 수련을 해본다..

 

우명 선생이 말하는 마음의 실체에 대하여

 

 

마음수련 우명 선생이 이야기하는 ‘본래’의 실체란 과연 뭘까

여행중 마음수련 우명 선생 책을 읽다

3일 휴가를 내고 차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우리나라도 멋진 곳이 있구나 새삼 발견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춥긴 했지만 겨울 바람이 차갑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와서 마음수련 우명 선생의 책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를 읽는데 여행 하는 내내 생각했던 제 마음과 비슷하여 와닿는 구절이 있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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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 속에 가진대로 사는 것이라.” – 우명.

내가 상쾌한 마음을 가지면 온 세상에 상쾌해보이고, 짜증나는 마음을 가지면 저 좋은 풍경도 짜증나게 바라보았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내내 든 생각은 ‘왜 진작 휴가를 내고 올 생각을 못했을까’ 였습니다. 끝내 내린 결론은 ‘그 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였지요. 한동안 저의 세상은 ‘바쁨’의 세상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바쁘다’라는 마음 뿐이었죠. 시간이 없다, 영화 볼 시간도 없고, 누굴 만날 시간도 없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일 할 시간이 없다며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바쁨’ 속에 갇혀서 어쩌면 저는 ‘바쁜 것’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이 세상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라는 걸 여행 내내 느꼈습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실체도 내 마음이 펼쳐지는 영화 같은 것이겠죠.

본래로-돌아가라-이야기하는-우명 선생-책발췌

“부질없는 수많은 번뇌의 이것저것은 모두가 뜻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는 것은 본래로 가야 알 수가 있는 것이라”

모든 것이 내 마음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실체는 도대체 뭘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던 찰나에, 위 소절은 어느 부분 그 질문에 답을 해줍니다.

본래로 돌아가면 수많은 사연인 마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모두가 뜻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경지가 되는 걸까요?

본래 마음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우명 선생의 저서에 보면 이야기하는 맑은 마음, 실체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오늘도 귀중한 깨달음을 얻으며 하루가 지나가네요.

언젠가 본래 마음을 탐구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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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선생의 마음실체

우명선생 본래 마음실체

고운 마음을 위해 마음 수련, 우명선생이 이야기하는 고운 마음

“색시 참 마음이 곱네.”
“그 사람은 마음이 참 고와.”
라는 말들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곱다는 표현도 참 이쁜 표현이네요. 하지만 전 정작 고운 마음이 뭘까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우명 선생의 책을 보다 보니 제목이 ‘고운 마음’이라는 시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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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살아서 하늘 사람 되는 방법 _ 우명>

그 중에서 몇 구절을 들고 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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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와야지 마음이 혼탁하면 고운 것이 아닌 거친 것이지”
고운 마음의 반대는 거친 마음.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칠다는 것은 모가 많이 나있고 둥글지 못하고 다른 것과 잘 부딪힌다는 마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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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탁하면 고운 것이 아닌 거친 것이지. 이것저것이 뒤섞인 것이지.”
“거친 것이란 부딪힘이 많은 것이지.”
거친 마음에 대한 설명이 다시 나오네요. 고운 마음의 반대는 거친 마음인데, 그 거친 마음은 마음이 혼탁하고 이것저것이 뒤섞인 마음이라고 우명 선생은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것은 부딪힘이 많은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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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자는 불행뿐이지. 마음이 혼탁한 자는 좋고 나쁘고의 기복이 많지만 마음이 고운 자는 기복이 없지.”
거친 자는 불행뿐이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말입니다. 내 마음에 부딪힘이 많은 사람은 어떤 회사를, 어떤 학교를 가도 만나는 사람마다 부딪히고 힘들어하고 불행해합니다. 온통 사람들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똑같은 환경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죠. 외부 환경 탓이 아니라 진짜는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불행이든 행복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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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자 바다같이 그 마음이 넓은 자이고 고운 자는 일체를 수용하는 자라.”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이라.. 다시 한번 내 마음 씀씀이에 대해 생각게 합니다. 나는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수 할 때 받아놓는 세숫대야의 물만큼도 넓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제 마음의 실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가 진흙탕을 튀겨도 그것조차 다 수용할 정도의 마음인가. 반성하고 또 되돌아보게 되네요. 진정 고운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숫대야만도 못한 내 마음의 크기를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음 수련을 하게 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우명 선생의 책은 항상 느끼지만 여러 번 읽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깊이가 새롭고 또 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XAysHVA5U

평범하게 산다는 건 뭘까? 우명의 책을 통해서 실체를 들여다보는 마음수련과 일상

가끔씩 마음수련이 필요할 때 우명 선생의 책을 들춰보게 됩니다. 그 중에는 삶과 매우 밀접한 내용들도 많고 통찰과 마음의 실체에 대한 정확하고도 명쾌하게 집어주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꽂힌 내용은

“평범이 비범이고

평범이 가장 위대하다”

라는 구절입니다.

우명 선생이 이야기하는 평범

사람들은 누구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을 품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쫓아 살다 보면 진짜 행복하고 위대해졌다, 라고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마음에 빈틈이 느껴지고 공허함이 느껴지지요.

그럼 평범하게 산다는 건 뭘까요?

우명선생의 책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평범이 비범이고 평범이 가장 위대하다.

평범한 것의 위대함

“비범은 특출한 것이나 삶이 평범인 마음이 큰 자가 가장 비범자이고 또 가장 위대한 자이다.”

또 참 위대함이란 일체를 수용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다가옵니다. 일체를 수용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요? 미운 사람도 수용하고 원수도 수용하고 어떤 조건에서도 수용할 수 있다는 건 보통 마음이 아닐겁니다.

그렇게 모두를 수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위대한 사람일텐데 그런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니 마음수련은 쉬운게 아닌가 봅니다. (ㅎㅎ)

평범하면서 비범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연을 보면 또 오히려 매우 쉽습니다.

물이나 바다, 공기 같은 자연은 정말 평범하고도 일상적으로 우리 곁에 있지만 그런 자연이 없다면 우린 존재할 수 없기에 매우 ‘비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물이나 공기, 자연은 자기가 비범하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요. 모두를 수용하지요. 그냥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것이란 이런 자연의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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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 위대한 자는 그 위대함에 갇혀 사나 그냥 평범하여 일체를 수용하고 더불어 말없이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잘난 사람이다.”

내가 좀 잘나간다, 내가 돈이 많다, 내가 지위나 명예가 높다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봤을 때 위대하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일체를 수용할 수 있는 자연의 마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명선생이 얘기하는 평범함의 실체는 ‘일체를 수용하고 더불어 말없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수련의 궁극적인 목표일까요? 수양이 부족한 저는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